(37) ‘에반게리온’에 얽힌 비화(秘話) 下

발행일 제 303호 2007년 11월 05일
[이우진의 거칠컬럼(37회)] ‘에반게리온’에 얽힌 비화(秘話) (下)

이 궁리 저 궁리하던 안노 감독은 한국으로 눈을 돌렸다. 결국 16화 이후는 제작진의 70% 이상이 한국인 외주제작자들로 이루어지게 된다. 게다가 연출 면에서도 뱅크 이외의 재이용 부분이나 정지 화면을 사용할 때, 필름이 아니라 비디오 데크를 사용해서 더빙 편집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하면 영상의 질은 떨어져 보이지만 차후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단축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배경을 상당시간 화면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게 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했다. 후반부에 미사토와 카지의 베드신에서 둘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속삭이는 밀회만 5분 이상 들려오는 것에 대해 세간에서는 ‘안노 감독이 PTA(일본 학부모협회의 약자)의 항의에 굴복한 것’, 특유의 연출기법이다’는 등 각양각색의 논평이 쏟아져 나왔지만 사실은 단순히 예산과 시간이 부족해서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예산과 시간의 한계는 이미 넘어서 있었다. 

사실 예산도 예산이지만 윤리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방영 전부터 구성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는 문제를 가지고 안노 감독은 TV도쿄와 계속 다투고 있었다. 사소한 태클에서부터 잔학신을 완전히 삭제할 것을 요구하는데 이르기까지 다양한 것들이었던 것이다. 방영이 시작되기 전, 이미 ‘아스카가 미쳐서 죽고(TV에서는 살아있었지만)’, ‘신지는 녹지만 부활’, ‘레이도 사망’이라는 몇몇 사실은 결정돼 있었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도 TV도쿄의 프로듀서나 관계자들은 계속해서 수정 압력을 가했고, 안노 감독은 이들과 거의 매일 다투게 된다. 결국 20화를 방영한 시점에서는 PTA로부터 항의가 쇄도해 TV도쿄의 상층부까지 화를 내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안노 감독도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TV도쿄의 상층부는 ‘이후 한번이라도 더 PTA에서 항의가 쇄도하는 애니메이션은 이유를 불문하고 방영 중지’라는 엄격한 통보를 했던 것이다.

여담이지만 이러한 상층부의 지시로 인해 당시 같은 채널에서 방송 중이던 ‘폭렬헌터’와 ‘신비한 유희’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에반게리온’과 한데 묶여 주의하라는 화를 당했다. 그래서 20화 이후의 이야기는 내용면에서 여러 가지 부자연스러운 변경이 많았던 것이다.

‘에반게리온’의 끝이 그런 모양새가 된 것은 안노 감독의 독특한 가치관이나 시나리오의 독창성 등 때문만이 아니라 이제까지 전기(前記)한 다양한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영향을 끼쳐서 그렇게 된 것이다. 얼마 전 막을 내린 부산영화제에서는 새로운 스토리, 연출, 시나리오로 무장한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이 공개돼 큰 호응을 얻었다. 예산과 시간, 여타 배경의 간섭 없이 제작되는 ‘에반게리온’의 세계가 앞으로 어떤 형태로 다가올지 자못 기대되는 바이다.

- 이우진(34)
1993년, 방년 19세에 게임잡지 기자로 게임계에 입문해 디지털캠프, 판타그램 등에서 개발자로 활약.
일본 프롬 소프트웨어에 입사해 아머드코어 시리즈의 프로듀스 역임 .
이후 모바일게임 회사로 자리를 옮겨 ‘대장금’등 10여종의 인기 모바일 게임을 개발. 세가코리아를 마지막으로 2006년 12월 게임업계 은퇴를 선언했다. 현재는 각종 집필활동과 UCC 창작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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