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니버스 7기 성우 공채에 대한 斷想

투니버스 성우 공채 1차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KBS도, EBS도, 대교도, 대원도... 전부 떨어졌을 때 웃어넘기며 주위에 덕담을 건네곤 했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평소답지 않게 개니버스 개니버스 하면서 주위에 악담을 늘어놓게 되는 것 같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고, 원래 사랑과 증오는 연관 관계에 있다고 하지 않았나...

애초에 사랑하지 않았으면 저주하거나 슬퍼할 일도 없다.

방송 오디션도 많이 떨어지고 영화 오디션도 심심찮게 떨어져서 이제 오디션 떨어지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식으로 대꾸해버리게 되었지만, 유독 투니버스 오디션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마음 한구석이 퀭해지는 것일까.

처음에 성우연기라는 것을 해본 것은 게임개발자구하기라는 타이틀에서다. 원래 글로 즐기던 패러디를 영상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매료 되어 3탄까지 만들었고, 시청자도 200만명 정도를 기록하게 되어 UCC쪽에서는 꽤 이름값을 하게 되었다. 특히 게임개발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 업계를 은퇴하고도, 업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식으로 핀잔을 듣기도 했던 저주받은 걸작이다.

그저 패러디로 만드는 것이 재미있어서 시작했던 것을 조금만 더 잘하면 좋겠다는 발상에서 스터디에 참여한 것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스터디에 참여하고 여기저기 지망생들 분위기나 일이 돌아가는 걸 보고, 한국의 성우 업계라는 것에 대해 얼추 가늠할 수 있게 되었지만, 나이도 많고 성우라는 것을 어릴적부터 열망해 온 사람도 아니었기에 정말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다.

어쩌다, 언더계에서 꽤나 잘 나가는 성우지망생들을 술자리에서 만나면 물어본다.

"너 성우 되고 싶다고 생각한거 언제부터였니?"

대답은 대부분 고등학교, 중학교 때부터이고 좋아하는 성우가 몇사람씩 있고 그들의 연기를 보고 따라하며 열망을 키워온 아이들이다. 어릴적부터 성우가 되고 싶었기에 학원도 남들보다 일찍 등록하고, 다년간의 시간을 언더계에서 보내온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위치에 존재하게 된것 같았다.

항차, 어릴적부터 준비해 온 아이들도 저러건대, 나이도 많고 어릴적부터 준비한 사람도 아닌 내가 가능할거라는 생각은 해 볼 수 없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과 달리 한달에 일정액 이상을 벌지 않으면 생활이 어려운 구조도 한몫해서 스터디를 한두달 나갔다 손 치더라도, 돈문제 때문에 그만두고 그만두고 해야했다.

선생님한테 돈이 없어요라곤 할 수 없으니까 적당히 둘러대긴 했지만, 다달이 여러 루트로 돈이 나가야 하는 내 입장에선 스터디 비용이란 것도 감당하기 힘들 때가 많았던 것이다.

기대가 없었던 때에는 오히려 주위에 떨어진 아이들을 둘러보며 덕담을 건네주고 아무렇지도 않은듯 있을 수 있어서 선생님한테서ㅡ

"성우시험에 대한 열망은 없고 그냥 취미로 하는거구나?"

라는 말까지 들은적도 있다.

그 말에 대한 대꾸는 그냥 겸연쩍은 미소 정도로 지나갔지만, 사실은 어떨까. 


기자로 일했던 것도 게임업계에 들어온것도, 애니메이션 연출을 한것도, 영화와 방송 쪽에 조단역으로 기웃거리게 된것도 모두ㅡ 스토리라는 공통의 매개가 있었다. 어쨌든 내가 하는 일에서 스토리를 지향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인생을 지배해 왔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될 수 있으면 되고 싶다 성우.

일반적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 CF나 나레이션 등에 집중해서 재테크에 열중하는 것과 달리 소소한 역할이라도 좋은 이야기 속에서 할당 된 스퀀시를 해내고 이야기가 전개 되는 것을 보고 싶다는 열망이 내 마음속에는 있다. 유명해지고 싶다거나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욕망이 아닌, 작가 펼쳐 낸 이야기에 동참해서 마지막까지 같이 서고 싶다는 생각이 내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겸연쩍은 미소는 질문에 수긍하는 미소가 아니라, 되고 싶지만 될 수 없는 현실을 인지한, 그래서 어느정도 씁쓸함과 허망함이 배어난 미소였던 것이다.

그렇게 씁쓸함과 허망함으로 점철 되었던 미소조차도 이제는 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는 것 같다. 시험에 떨어져서 괴로워 하던 많은 지망생들의 모습이 점차 데자뷰 되가는 걸 느낄 수 있다.

이 쯤에서 중단하면 좋을텐데ㅡ

라고 생각하고 맡았던 작업 건이나 비즈니스에 매몰차게 매달려보지만 잘 되지 않는다.


게임업계를 은퇴할 때,

이제 다시는 허망한 꿈 따위 꾸지 않을거라고, 어디까지나 돈에 집중해서 남들보다 많이 벌고 잘먹고 잘살 수 있는데 초점을 맞출거라고 그렇게나 다짐했건만 다른 업계에 와서도 이렇게 뫼비우스의 띠 같은 고민을 계속 하고 있다.

연기자로서 대본을 받아 들고 맡은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캐릭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쏟는다. 그리고 연구하고, 반복연습해서 남이 듣거나 보기에 튀지 않는 캐릭터가 되었을 때, 비로소 자기가 한 연기에 대한 보람과 성취감을 느낀다. 연기자는 이것의 반복이다. 이것이 반복되면서 연기자로서 자질이 좀 더 완성되고, 연기의 선도 굵고 명확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든 방송이든 많이 해본 사람이 덜 튀고, 성우도 예외는 아니다 10년정도는 경력이 쌓여야 누가 보더라도 성우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연기자들이 하나라도 더 많은 작품에 출연해서 자신의 배역을 소화하려고 애쓰지만, 많은 경우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심지어는 캐스팅 되었다가 중간에 온갖 사정에 의해서 배역이 다른 사람에게 날아가 버리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것을 이쪽 업계에서는 '배우를 들었다 놨다 한다' 라고 표현한다.

나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체인지라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 기억하는데 SBS쪽 에이전시한테 연락이 와서 조혜련씨가 한국에 와서 겪는 에피소드를 방영할건데 일본어 전문통역원으로 같이 출연을 해달라는 거였다. 대사도 꽤 많고 중간에 태권도 비슷한걸 하는 씬도 있어서 꽤 연습을 했었지만, 전체리딩 하루전날 나가리가 나버렸다. 화가 있는대로 뻗쳐서 에이전시 한테 항의를 했더니, 기획사에서 뚫고 들어와서 어쩔 수 없다는거였다.

"요새는 이런 버라이어티 조역도 기획사에서 작업하나보죠?"

화가 치밀어서 그렇게 말하고 끊어버렸지만...

그런 일을 겪고 나면 정말 연기에 대해 오만정이 다 떨어지고 다시는 하기도 싫고 뭐 그런 생각이 드는데...그러면서도 몇달 있다가 또 기어들어오는 게 이 바닥의 순리이기도 하다.

사실,

성우 공채란 것도 오디션인데... 단문을 받아서 열심히 연습한 만큼 허망해지는 것이 순리다. 그냥 씁쓸한 미소를 지을 때는 떨어져도 수긍하고 그렇게 지나갔지만, 점점 공을 들이고 애 쓰는 만큼 씁쓸하다거나 허망한 생각 보다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심적 갈등이 커지는... 그런 단계에 와 있는 것 같다.


성우 공채에 대한 斷想은 잠깐 생각하는 주제로서가 아닌 이면의 뜻 그대로,

아예 생각을 접어야 할 斷想이라고 수십번씩 되뇌어 보지만, 잘 되지 않는다. 


fin.






 













통계 위젯 (블랙)

69
49
1024529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블랙)

216

국가별 방문자 통계

free counters

이우진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