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용기 있는 자를 선택한다


국민학교 때 무려 14번이나 사는데를 옮겨 다녔다. 그러면서 학교는 모두 세곳을 다녔는데 그나마 3학년은 작은 아버지 집에 맡겨져 아예 다니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작은 아버지 집에 맡겨 질 때 아버지는 넓이가 10여평에 이르는 서재로 나를 데리고 들어 갔다. 한쪽 벽면에는 400여권의 위인전기가 있었고, 나머지 벽면에는 200여권의 역사책, 마지막 한면에는 삼국지와 손자병법, 초한지, 세계명작동화와 한국의 고전 소설이 있었다.

"너 앞으로 여기 있는 책만 다 읽어라. 여기 있는 책만 다 읽으면 학교 안가도 충분히 훌륭한 사람 될 수 있으니까."

지금 사는 인생이 썩 훌륭하다거나, 모범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게다가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것이 절대 자랑이 될 수 없지만, 어쨌든 아버지 덕분에 나중에 사회에 나와서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영민함과 통찰력을 배우게 됐다고 생각한다.

순간적으로 선택을 잘못하면 언제든 바닥으로 내려 앉을 수 있다. 폭력과 권력에 맞서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런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여러 게임회사를 전전하며 자연스럽게 깨우치게 된것 같다. 

물론 나만해도 운이 엄청 좋은 놈이다. 게임 산업이 1000% 이상의 고도 성장을 기록할 때, 그땐 일반적으로 게임 산업이 알려져 있던 시기도 아니었다.

모든 사람이 오매 불망 좋은 대학 나와서 대기업만 가고 싶어하던 시절, 나는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내팽개치고 그저 무조건, 게임에 대해서 글을 쓰던지, 될 수 있으면 만들고 싶었고, 그것도 아니면 용산을 헤매며 미친듯이 게임팩을 긁어 모으던 열정 하나만으로 살았다.

성장통을 제대로 거치면서 빛나는 날개를 갖기 위해선 늘 고통과 위험이 수반 되는 것 같다. 내 인생을 돌이켜 봐도, 언제나 정상에 오르기 전엔 지독한 고통, 아주 피말리는 스트레스가 머릿속을 쥐어 짜듯이 괴롭혔다.

여기저기서 긁어 모은 기자들만으로 3달치 뿐인 경영기간에 잡지가 순조롭게 팔릴지 전전긍긍할 때도 그랬고,

만들던 온라인 레이싱 게임을 회사의 합병으로 더이상 만들지 못하게 되자, 어떻게든 콘솔 게임을 하고 싶어서 노심초사할 때도 그랬고,

회사의 잔고가 텅 비어 버린 순간에 마지막으로 쥐어 짜듯이 만든 모바일 RPG를 SKT에 등록할 때도 그랬다.

그땐 정말 회사의 모두가 파이널 판타지의 심정이었을게다.

게임이라는 분야에서 '業'을 하고 싶었을 때 '돈' 따위는 내 안중에 없었다. 그저 게임 속에서 행복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내 생각이 들어간 게임을 발표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늘 그것이 궁금했다.

그렇다고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게임을 만들지 않았다. 언제나 기준은 나 자신이었다.

'온라인'으로 전이 되고 난 후, 게임에 들어가는 생각은 '가치관'이나, '멘탈'이 아닌 '기술'과 '지능'이 되고 말았다.

떠나는데 미련이 없었던 깨끗한 이유지만, 남아 있는 사람은 잘 되야 한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이 업계에 응원의 휘파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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